밀양김씨 비조 김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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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공(大輔公)의 후예(後裔)로서 신라천년의 찬란한 역사를 이어온 왕자(王子) 왕손(王孫)으로서 신라국 김씨(金氏) 56대(代) 마지막 왕(王)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의 제3자 명종(鳴鍾:시 영분(諡永芬), 봉경주군(封慶州君) 또는 대안군(大安君)) 9세손 후덕(候德:전중내 급사(殿中內給事)) 11세손 영고(永固:궁각문기후(宮閣門祇候)) 12세손 인경(仁鏡:호 명암(號明庵) 시 정숙(諡貞肅) 관직(官職) 평장사(平章事)) 공(公)의 차자(次子)이시다.

13세손이신 김승조(金承祖:본 경주(本慶州)) 사직공(司直公)은 우리 밀양김씨의 관시조(貫始祖)이시다.

※ 경순대왕(敬順大王)의 14세손(世孫)이고 명종(鳴鍾:봉경주군(封慶州君))의 13세손(世孫)이다.

 

 

 

시조 사직공은 성품(性品)이 강직(剛直)하시었고, 용모(容貌)가 기이(奇異)하시고, 충효(忠孝)의 절의(節義)가 높고 제세(濟世)의 책(策)과 용병(用兵)이 비법(秘法)이 출상(出象)하신 시조(始祖)께서는 고려조 낭장(郞將:정6품(正六品))으로서 학문(學文)에도 뛰어나시고 특히 활(弓)에도 명인(名人)이시었다.

선비로서 자세(姿勢)를 갖추고 있을 무렵 고려조왕조는 심각(深刻)한 세태(世態)속에서 국운(國運)이 쇠퇴(衰退)한 조정(朝廷)이었을 그 당시 고려 원종(元宗) 12년 1271년 1월에 김방경(金方慶:구 안동인(舊安東人)) 장군(將軍)의 막하장(幕下將)으로 자원(自願) 출전(出戰)하여 강화도(江華島)의 삼별초(三別抄:좌(左)ㆍ우(右)ㆍ신의군(神義軍))난(亂) 토벌(討伐)에 참전하여 (삼별초(三別抄)는 본래(本來) 나라 특수부대(特殊部隊)이나 반란(反亂)함) 국가 정의군이 반격(反擊)하자 격퇴(擊退)되어 전라도와 경상도로 남하(南下)하여 진도(珍島) 남해(南海)가 본거지로 삼은 반란군은 기세(氣勢)가 높았다.

 

 

 

예컨대 경상도 밀성군(密城郡)에서도 삼별초난을 호응(呼應)하려는 반란이 일어났다. 이때 밀성군인(密城郡人)과 청도군(淸道郡)) 일선현령(一線縣令)을 죽이고,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大混亂) 속에 백성은 공포와 불안의 생활(生活)일 때 김방경장군의 영(令)을 받고 병사(兵士)를 이끌고 출전(出戰)한 사직공(司直公) 김승조(金承祖)는 경주판관(慶州判官) 엄수한(嚴守漢)의 병사(兵士)와 연합(聯合)하여 반란군(反亂軍)을 토벌(討伐)하여 항복(降伏)을 받고 평정(平定)시켰다.

공인(恭人) 김해김씨(金海金氏) 판관(判官) 김적선(金積善) 중추원사(中樞院事) 여(女), 자(子) 혁(赫) 숙신(叔臣) 별좌(別坐:정5품(正五品))를 거쳐 찬성사(贊成事)에 올랐으며, 손자 희천(禧天)은 병부사(兵部事)를 지냈다.

 

 

 

봉상(奉常)은 부금지제교기(副今知製敎祇:경향파중조(京鄕派中祖)) 항렬(恒烈) 영추(英秋) 광석(廣碩:태종(太宗) 12년 1412년생) 통정대부를 거쳐 밀양부사(密陽府事:평안도(平安道), 함경도(咸鏡道), 황해도(黃海道) 중조(中祖)) 윤신(潤身:성종(成宗) 15년 1484년생)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 장사랑(將仕郞)과 좌랑(佐郎:정6품(正六品)) 전라도(全羅道)로 낙향, 구(龜:중종(中宗) 25년 1530년생) 가선대부, 행용장군(경기(京畿) 광주파조(廣州派祖)), 홍준(弘濬:명종(明宗) 12년 1557년생) 2등공신에 책록되고 병조판서(兵曹判書)(충청도파조(忠淸道派祖)), 극대(克大:선조(宣祖) 9년 1576년생) 중추부참군(中樞府叅軍) (안산(安山), 옹진군파조(派祖))

 

 

대보공(大輔公)의 후예(後裔)로서 신라천년의 찬란한 역사를 이어온 왕자(王子) 왕손(王孫)으로서 신라국 김씨(金氏) 56대(代) 마지막 왕(王)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의 제3자 명종(鳴鍾:시 영분(諡永芬), 봉경주군(封慶州君) 또는 대안군(大安君)) 9세손 후덕(候德:전중내 급사(殿中內給事)) 11세손 영고(永固:궁각문기후(宮閣門祇候)) 12세손 인경(仁鏡:호 명암(號明庵) 시 정숙(諡貞肅) 관직(官職) 평장사(平章事)) 공(公)의 차자(次子)이시다.

13세손이신 김승조(金承祖:본 경주(本慶州)) 사직공(司直公)은 우리 밀양김씨의 관시조(貫始祖)이시다.

※ 경순대왕(敬順大王)의 14세손(世孫)이고 명종(鳴鍾:봉경주군(封慶州君))의 13세손(世孫)이다.

 

 

 

시조 사직공은 성품(性品)이 강직(剛直)하시었고, 용모(容貌)가 기이(奇異)하시고, 충효(忠孝)의 절의(節義)가 높고 제세(濟世)의 책(策)과 용병(用兵)이 비법(秘法)이 출상(出象)하신 시조(始祖)께서는 고려조 낭장(郞將:정6품(正六品))으로서 학문(學文)에도 뛰어나시고 특히 활(弓)에도 명인(名人)이시었다.

선비로서 자세(姿勢)를 갖추고 있을 무렵 고려조왕조는 심각(深刻)한 세태(世態)속에서 국운(國運)이 쇠퇴(衰退)한 조정(朝廷)이었을 그 당시 고려 원종(元宗) 12년 1271년 1월에 김방경(金方慶:구 안동인(舊安東人)) 장군(將軍)의 막하장(幕下將)으로 자원(自願) 출전(出戰)하여 강화도(江華島)의 삼별초(三別抄:좌(左)ㆍ우(右)ㆍ신의군(神義軍))난(亂) 토벌(討伐)에 참전하여 (삼별초(三別抄)는 본래(本來) 나라 특수부대(特殊部隊)이나 반란(反亂)함) 국가 정의군이 반격(反擊)하자 격퇴(擊退)되어 전라도와 경상도로 남하(南下)하여 진도(珍島) 남해(南海)가 본거지로 삼은 반란군은 기세(氣勢)가 높았다.

 

 

 

예컨대 경상도 밀성군(密城郡)에서도 삼별초난을 호응(呼應)하려는 반란이 일어났다. 이때 밀성군인(密城郡人)과 청도군(淸道郡)) 일선현령(一線縣令)을 죽이고,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大混亂) 속에 백성은 공포와 불안의 생활(生活)일 때 김방경장군의 영(令)을 받고 병사(兵士)를 이끌고 출전(出戰)한 사직공(司直公) 김승조(金承祖)는 경주판관(慶州判官) 엄수한(嚴守漢)의 병사(兵士)와 연합(聯合)하여 반란군(反亂軍)을 토벌(討伐)하여 항복(降伏)을 받고 평정(平定)시켰다.

공인(恭人) 김해김씨(金海金氏) 판관(判官) 김적선(金積善) 중추원사(中樞院事) 여(女), 자(子) 혁(赫) 숙신(叔臣) 별좌(別坐:정5품(正五品))를 거쳐 찬성사(贊成事)에 올랐으며, 손자 희천(禧天)은 병부사(兵部事)를 지냈다.

 

 

 

봉상(奉常)은 부금지제교기(副今知製敎祇:경향파중조(京鄕派中祖)) 항렬(恒烈) 영추(英秋) 광석(廣碩:태종(太宗) 12년 1412년생) 통정대부를 거쳐 밀양부사(密陽府事:평안도(平安道), 함경도(咸鏡道), 황해도(黃海道) 중조(中祖)) 윤신(潤身:성종(成宗) 15년 1484년생)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 장사랑(將仕郞)과 좌랑(佐郎:정6품(正六品)) 전라도(全羅道)로 낙향, 구(龜:중종(中宗) 25년 1530년생) 가선대부, 행용장군(경기(京畿) 광주파조(廣州派祖)), 홍준(弘濬:명종(明宗) 12년 1557년생) 2등공신에 책록되고 병조판서(兵曹判書)(충청도파조(忠淸道派祖)), 극대(克大:선조(宣祖) 9년 1576년생) 중추부참군(中樞府叅軍) (안산(安山), 옹진군파조(派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