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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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본래 신라의 서울이었다. 한(漢)나라 선제오봉(宣帝五鳳) 원년(기원전 57년) 갑자(甲子)에 박혁거세(朴赫居世)께서 건국하시고, 도읍으로 정하셨다. 국호는 서라벌 혹은 사로라고도 했는데 뒤에 신라(新羅)라고 했다. 석탈해왕 9년 을축(서기 65년)에 서쪽 시림(始林)에서 닭의 이적이 있은 후 계림이라고 고치고 그대로 국호를 삼았다.

 

15대 기림왕 때 다시 신라라고 했다. 박씨왕(朴氏王)은 열 분이요 석씨왕(昔氏王)은 여덟 분이요, 김씨왕(金氏王)은 서른여덟 분이였으니, 역년 992년이었다. 경순왕(敬順王)께서 고려 태조께 나라를 넘기시니 경주부로 개편되고, 성종왕(成宗王)이 동경유수로 고쳤다. 충렬왕이 계림부로 고치고, 조선조 태종(太宗)이 경주란 옛 이름을 회복시켰다. 일명 금성(金城)이라고 하고 혹은 월성(月城) 또는 오성(五城)이라고 한다.(현재 경주시)

 

경주는 본래 신라의 서울이었다. 한(漢)나라 선제오봉(宣帝五鳳) 원년(기원전 57년) 갑자(甲子)에 박혁거세(朴赫居世)께서 건국하시고, 도읍으로 정하셨다. 국호는 서라벌 혹은 사로라고도 했는데 뒤에 신라(新羅)라고 했다. 석탈해왕 9년 을축(서기 65년)에 서쪽 시림(始林)에서 닭의 이적이 있은 후 계림이라고 고치고 그대로 국호를 삼았다.

 

15대 기림왕 때 다시 신라라고 했다. 박씨왕(朴氏王)은 열 분이요 석씨왕(昔氏王)은 여덟 분이요, 김씨왕(金氏王)은 서른여덟 분이였으니, 역년 992년이었다. 경순왕(敬順王)께서 고려 태조께 나라를 넘기시니 경주부로 개편되고, 성종왕(成宗王)이 동경유수로 고쳤다. 충렬왕이 계림부로 고치고, 조선조 태종(太宗)이 경주란 옛 이름을 회복시켰다. 일명 금성(金城)이라고 하고 혹은 월성(月城) 또는 오성(五城)이라고 한다.(현재 경주시)